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문단 편집) === 한국의 대응 ===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통해 [[대한민국 육군]] [[육군특수전사령부|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대원들로 이루어진 64명의 결사대[* 5개 팀, 1개 지역대 규모이다.]를 조직한다. 1공수특전여단의 [[지역대장#s-2.3]]이었던 김종헌 [[소령]]이 이 결사대의 지휘관을 맡았다. 이 결사대가 해당 작전 지역에 투입되어 [[미루나무]]를 절단하는 미 육군 공병들을 엄호하고, 육군 [[제1보병사단]] [[대한민국 육군/수색대|수색대]]는 그 일대에 매복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보복작전이 수행됐다. 특전사 결사대원들은 [[카투사]]로 위장, 권총과 수류탄은 전투복 속에 숨기고, [[M18A1|크레모아]], [[M79]] 유탄발사기 등은 삽, 곡괭이 등 작업도구 밑에 감추는 식으로 [[트럭]]에 탑승하여 공동경비구역에 들어가 도끼와 곡괭이자루를 가지고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하였다.[* [[M16 소총]]은 샌드백에 넣어 가져갔는데, 미군이 물어보면 방호벽으로 둘러댔다.] 대원들이 초소에 접근해 손에 도끼와 소총을 들고 활보하며[* 당시 특전사 지휘관의 인터뷰에 의하면, 박 대통령은 북한군이 30m만 접근해도 발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30m를 100m로 고쳤다고 한다.] 초소를 난장판으로 만들자, 북한군은 모조리 도망쳤다. 간간히 나타난 북한군은 독이 오른 특전사 대원들이[* 초소를 난장판으로 만들 때, 초소 안의 김일성 [[초상화]]를 깨부수고 커튼 등을 약탈했으며, 북쪽을 향해 오줌발까지 갈겼다고 한다.] 위협을 하며 욕을 퍼붓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당시 매복 작전을 수행 중이던 1사단 수색대원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러다 정말 일이 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특전사 결사대는 북한군이 특전사의 공격에 대해 무력 대응을 할 경우엔 북한군들을 과감히 사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먼저 북한군을 사살하지는 말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즉, 북한군을 구타하고 깽판을 놓다가 북한군이 발포하면 바로 응사해서 사살하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북한군에게 선제공격을 당하는 대원들은 전사하게 될 것이므로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결사조로서의 투입인 것이다. 실제로 출동 직전에 유서와 손톱 등을 남겼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북한군이 처음부터 저항없이 무조건 도망가기만 해서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실제로 작전에 투입된 1공수 대원 증언에 따르면 유서 작성, 손톱과 머리카락을 잘라서 남겼고, 출동 전까지 외출 외박이 금지된 채 영내 대기를 하였다. 초소를 부술 때 북한군 초소 병력들은 도주를 했지만, 곧이어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들이 분계선을 따라 도열하여 대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포 등의 공격은 없었고 모든 초소를 파괴하는 걸 구경만 하였다. 특전사 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무표정한 북한군 무장 군인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초소를 파괴하는 동안 나머지 특전사 대원들도 소총으로 무장하고 북한군 출동 병력과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1공수 백모씨의 증언이다. 1987년 청취되었다.] 미국은 어디까지나 나무를 벌목하기만 하고 북한의 반응을 볼 계획이었기에, 실제 전쟁을 수행할 전력을 동원했어도 무력 시위에만 그쳤고, 그렇다 보니 한국 육군 특전사 대원들이 갑자기 북한 초소를 공격하는 급발진에 대경실색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패전이라는 엄청난 후폭풍으로 반전여론이 가득한 상황이었으며 [[제럴드 포드]] 미 대통령은 [[워터게이트]]로 사임한 [[닉슨]]을 급히 승계한 부통령 출신이라 정통성이 없어서 미 의회로부터 항상 견제를 당하던 신세였다. 즉, 단순 무력시위가 또 다른 전쟁으로 확전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정치적인 부담이 매우 큰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보복행동을 결코 좋게 볼 수 없던 상황이었던 것. 거기에다가 당시 [[헨리 키신저]]와 미국 외교 정책결정권자들은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통해 [[소련]]을 견제하고자 했는데 만약 북한과 미국의 직접 무력충돌이 빚어지게 된다면 북한의 후견국인 중국은 당연히 위협을 느껴 소련과 [[중소분쟁|냉랭했던 관계]]를 다시 청산하고자 할 것이고 대소련 봉쇄망 구축을 최우선순위로 삼았던 미국 입장에선 엄청난 손해이다.] [[미루나무]]를 자른 후에 특전사 대원들이 북한군에 욕설을 퍼붓고 인민군의 초소로 달려나가자 엄청 당황했다고 한다.[* 한편 이 사건 전까지 박정희 정권과 미국의 사이가 소원해져 [[주한미군]] 축소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국지전을 발발시켜 주한미군을 붙들어놓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결사대 작전을 지시했다는 분석도 있다. 더불어 베트남 전쟁 이후 전반적인 [[평화주의|반전]] 움직임과 더불어 미국이 묵인했던 독재 세력들을 차근차근 정리해나가는 시기이도 했기에, 이는 박정희에게는 충분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무리수를 두었다는 평도 존재한다.] 미군이 전쟁 발발을 우려해 결사대를 제지하자, 특전사 대원들은 북측 도로 차단기를 제거하기 위한 진격에 불응하는 미 육군 트럭 [[운전병]]을 [[권총]]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이 일로 김종헌 소령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으나 흐지부지되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애초에 특전사는 부사관 위주의 작전편제이므로 일반 병사로 분류되는 특전병, 그것도 행정업무 담당의 특전병이 결사대에 투입될 리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